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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을 낳아 기르면서 더이상 2세 계획이 없는 아내. (물론 난 아니었다)
임신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느냐 남성성을 잃는 듯한 심리적 압박을 극복하느냐 두 갈래 선택지를 놓고 어영부영 지나온 시간들. 그 길었던 고민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결론은 정관수술.

올해가 가기전, 아니 내년 1월까지 수술을 완료하기로 결정하고  아내와 합의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떤 결정이든 고민의 시간이 길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만 길어진다는 걸 또 한번 깨닫는다.

요즘은 카톡상담에 활성화 되어 있는 관계로 회사근처 몇군대 비뇨기과에  문의를 넣었다. 병원 선택기준은 세가지. 전문의가 있는가, 가격이 착한가,  회사와 가까운가. 


세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의원을 찾아 다음날 예약.
하루가 지나고 수술당일이 되었다.  직진.

오늘로 난 정자배출 불가남이 된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 
예쁜 딸하나 낳고 싶었는데. 이번 생엔 끝이다.

잘생긴 의사선생님과 상담. 수술시간 10~15분. 마취할때 조금 묵직하게 아플수 있고, 1/1000 확률로 합병증, 2/1000확률로 정관 재 연결될 수 있으며, 3개월 후 정액검사로써 무정자를 확인하면 비로소 정관수술의 성공여부를 확인할 수 있단다.

여기서 했다. 나랑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팬티를 벗고 40인치 쯤 되는 헐렁한 수술 바지를 입고 흘러 내리지 않게 두손으로 꼭 허리춤에 잡아 간호사님을 따라 수술실로 입장하였다.

간호사님의 지시대로 바지를 훌렁 벗고 수술대 위에 누웠다.
아랫도리만 벌거 벗은 채로 누워 누군가에게 나의 중요부위를 노출시키는게 얼마만인가. 중 1때 포경수술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살짝 부끄러운 감정이 샘 솟을때 쯤 면도칼을 들고 고환부위 쉐이빙.
까끌까끌 소리가 들려온다. 빨간약으로 수술할 부위를 덕지덕지 닦아 혹시 모를 염증유발물질을 제거하는 간호사님.


익숙한? 파란색 두꺼운 구멍뚤린 천으로 수술부위를 제외한 다른부위는 덥어둔다. 
누운 자세 머리위로 수평 봉이 하나 있는데 이건 뭐하는 것일까. 링겔 걸어두는걸까?
파란 천을 봉에 걸어 내가 수술 현장을 직접 볼 수 없게 막아두는 가림막 같은 역할을 하는 것 임을  알게 되었다.  

십여분 동안의 수술준비가 끝나고 전문의 원장선생님을 맞이할 시간. 자그맣게 들려오는 라디오 음악소리. 가림막에
가려 주변상황이 확인되진 않지만 아직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으셨다. 

꽤 오랜시간 원장선생님을 기다리며 간호사님께  마취는 어떻게 하냐, 마취크림을 바르냐, 주사를 놓냐, 아프냐, 몇방 놓냐, 하루에 수술을 몇번이나 하냐 수술 끝나고 아프냐.. 이런저런 궁금한 점들을 물어본다. 

어디 병원은 수면마취로 수술하는 곳도 있고 마취 크림바르고 하는곳도 있다는데 여긴 주사! 아픈 주사란다.
그래서 가격이 착한걸까? 평생 한번 하는건데 돈 좀 더 주고 수면으로 하는 곳을 찾아갈껄 그랬나?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카드결제 취소하고 회사로 돌아갈까. 혹시 이미 내 정액속엔 정자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굳이 안해도 임신가능성이 이미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면 몇십만원 들여 아프고 고생스런 수술을 할 필요가 없자나.

아..먼저 정자검사부터 했어야 했어.. 근데 이미 늦었어.

아직 원장선생님 인기척은 없다.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랬지 늦었다고 생각할때 그 때가 늦은거라고.
그래 가만히 정신을 가다듬고 누워있자. 
어짜피 길어야 15분. 마취주사 놓을때 따끔 한번이면 끝나겠지.

얼마전 했던 눈밑 지방재배치 수술이 떠오른다. 눈을 까뒤집고 마취주사를 놓고 허벅지 지방을 뽑아내고 수면마취를 하고 .. 그 고통스런 1시간을 참아냈던 나 아니던가. 까짓거 15분. 금방 지나가리라..
아니 15분 엄청 긴 시간인데..  온갖 잡념들이 머릿 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을 즈음. 두둥.

원장선생님 등장. 

자 이제 시작할께요~ 

마취주사 놓을 때 경직되어 있으면 마취가 잘 안됩니다. 살짝 따끔하니까 힘빼고 편안하게 계시면 되세요~

말은 쉽다. 행동으로 옮기는게 어려울 뿐.

따끔하고 묵직한 통증이 그곳으로부터 진하게 느껴진다. 서너번의 따끔. 묵직한 통증이 가시자마자

삐~~~익. 
레이저 소리. 살타는 냄새. 다행히 통증은 없다.  

삭둑삭둑 가위질 소리, 각종 수술도구들을 들었다 놨다 서로 부딛히는 소리들.
차가운 수술도구 소리들 사이로 라디오에서는 겨울을 알리는 성탄 노래가 들려온다. 아픔도 없고 느낌도 없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어느순간 수술도구가 정리되는 듯한 소리들..

무언가를 덥덥하는 느낌이 아랫도리에 전해오면서 선생님의 한마디.

"수술 잘 끝났습니다."

간호사의 정성스런 뒷 정리가 이어진 후 기상명령을 받고 수술대에서 일어나 섰다. 차렷자세로 서있으니 엉덩이쪽에 뭍은 빨간소독약을 손수 닦아주시는 간호사님.

40인치 몸빼바지를 다시 주섬주섬 걷어올리며 수술실을 나왔다. 

간호사님의 수술 후 주의사항을 경청한 후 3개월 뒤 수술 성공여부확인을 위한 방문일정을 조율 한 다음 항생제와 소염제로  구성된 5일치 약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수술성공여부는 3개월 뒤에 이거로 확인가능.

 

 


그렇게 난 오늘 無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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